맘야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까마귀는 길조이다 :: 세상에 이치 본문
까마귀
“까마귀는 길조이다.”
까마귀가 “까~악” 하고 울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싫어한다. 필자도 그랬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우선, 까마귀는 매우 영리하다. 지능이 높아서 사람과 대화가 가능하다. 까마귀의 지능은 차 위에 쌓인 눈 위를 구르며 눈썰매 놀이를 할 정도이다. '놀이'를 즐긴다는 것은 매우 고차원적인 지적 능력이다. 외국에서는 까마귀를 신성하다고 여기고 애완용으로 키우며 가까이 지내고 있다.
까마귀는 효도를 실천하는 새이다. 우리의 조상님들께서 감나무 맨 꼭대기에 달린 감을 따지 않고 놔두는 것은 까마귀가 늙은 부모를 위해 그 감을 물어가 공양할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이다. 까마귀가 얼마나 지적으로 우수하고 자연의 이치를 깨우치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까마귀는 옛 신화에 자주 등장한다. 고구려의 깃발은 태양에 사는 세 발 달린 까마귀인 ‘삼족오(三足烏)’이었다. 이토록 우리 조상님들과 까마귀는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까마귀가 나타나서 울면 그곳에서는 초상이 났으므로 까마귀가 ‘영혼을 인도 한다’라고 생각하여 영적인 새로 추앙했었다.
까마귀에 대한 오해는 어느 땐가부터 잘못 알려지면서 흉조로 생각하게 되어버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까마귀는 좋은 소식을 알려주고 영적인 인도를 해주는 <길조>이다. 대한민국에서 전쟁이 한창일 때 까마귀가 시체를 먹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징그러워하고 혐오감이 생겼을 수 있다. 까마귀는 사람의 시체를 먹은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따랐을 뿐이다. 그 까마귀의 작용은 미처 땅에 묻지 못한 시체들이 가져올 세균의 악영향을 줄여주었다. 우리의 신체가 생명을 잃고 땅에 묻혔을 때 땅속에 있는 미생물의 작용으로 분해가 되듯이 까마귀는 대자연 속에서 자신의 작용을 충실이 했을 뿐이다.
“결코, 까마귀는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
필자는 까마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늦은 잠에서 깨워 주었고 위험을 알려 주었으며 그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을 안내해 주었다. 이것을 알아차렸을 때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나는 해준 것이 없는데 까마귀는 나를 대가 없이 도와주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은혜를 갚는 길은 까마귀의 오해를 풀어주는 것이었다.
“까마귀들아! 정말 고맙다."
까마귀가 주위에 나타나면 다들 고개를 들어 까마귀를 바라보자. 분명히 무언가의 계시를 주는 것이다. 까마귀는 명당을 찾아 사는 새이다. 또한, 까마귀가 사는 곳은 깨끗하고 영적이다. 대한민국의 도시들에서 까마귀가 안 보이는 이유는 그만큼 탁하기 때문이다.
까마귀를 가까이서 본 적이 있는가? 내가 봤던 까마귀는 생각보다 매우 컸다. 예상컨대 매와 수리보다 더 커 보였다. 그 눈은 새까맣고 흡입력이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말해 주려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며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자신들이 갑갑해 하는 도시까지 날아와서는 나를 도와주었다. 이런 희생정신은 고차원의 지적능력을 갖춘 인간도 실천하기 힘들다. 까마귀는 인간에게 좋은 작용을 하는 새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 까마귀를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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