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야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제9회 각본 본문

맘야의 세상 이야기

제9회 각본

맘야 2017. 1. 2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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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듣기>

팟빵 - http://www.podbbang.com/ch/12973

아이튠즈 - https://itunes.apple.com/kr/podcast/mam-yaui-ileonjeoleon-iyagideul/id1195300242?mt=2


<방송 보기>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watch?v=2yvzhTPwo_g&list=PL18_TeFgN9R1hhNV3VSttdW9_7WqAX6PK&index=1

카카오TV - https://tv.kakao.com/channel/2687112/cliplink/301928409?playlistId=73108&metaObjectType=Playlist


<방송 내용>

안녕하세요? 맘야입니다.

오늘은 2017년 01월 24일 화요일입니다. 저는 오늘도 역시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마음이 힘든게 겹쳐 있어서요. 쉽사리 결정을 못내렸어요. 그래서 '아! 또, 지금 마음이 별로 좋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녹화를 하기전에 가만히 앉아서 불경을 외워봤습니다. 불경을 외우고 나니까 약간 좋아졌어요. 아까 잠에서 일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기분이 약간 처진 상태로 있었는데요. 그게 음악을 들어서 해소가 안되었는데 낭독을 하고 나서 보니까 좀 더 해소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말을 하는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몇 일 동안 눈이 왔었어요. 눈이 오는데 처음에는 굉장한 눈보라로 시작을 했거든요. 근데, 하루 지나고 나서 보니까 눈이 진짜 이쁘게 오는거 있죠?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눈이 내리면서 소복소복 쌓였습니다. 그런 눈길을 걸으면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오늘은 그런 눈길을 걷는다는 기분으로요. 맘야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9번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9번째 이야기의 주제는요. 제 블로그 '책 이야기 / 책 - 세상에 이치'라는 카테고리에 보시면 '각본 :: 세상에 이치'라는 글이 있습니다. <제8화>에서 이야기했던 '집필을 결심하며' 그 이후에 바로 작성을 했던 글입니다. 올린 날짜는 2014년 09월 05일 이구요. 이 글도 아직까지 최종 수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014/09/05 - [책 이야기/책 - 세상에 이치] - 각본 :: 세상에 이치


각 본

우리는 우리가 짜 놓은 각본에 의해서 잠에서 일어나고 밥을 먹고 직장(학교)에 가고 지인을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집 짓고 여행하고 행복을 찾아서 돌아다닌다. 뇌의 진화수위가 가장 높은 인간은 이 각본으로 말미암아 지구에있는 모든 고등 동물을 정복하였다.

세상은 이처럼 각본(계획)들에 의하여 움직여진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식물이건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의 각본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도 우리에게 알려져있다. 동물은 식물보다 더 많은 각본을 가진다. 매초, 매분, 매시, 매일, 매월, 매년, 사시사철, 밤낮으로 항상 뇌에서 고차원적인 각본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야말로 각본을 짜며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각본 속에 행동을 하는 도중에도 또 다른 각본을 바로바로 만든다.

예를 들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냉수 2잔을 마시기로 계획하고 잠을 청했다고 하자.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냉장고로 가는 도중에 어제 문밖에 걸어둔 수건을 보고 갑자기 어머니의 잔소리가 생각나서 그것을 집어 들고 냉장고와 그 반대편에 있는 세탁기와의 거리를 순간적으로 계산하여 경로를 정한다.

이렇듯이, 우리는 아주 짧은 순간에도 바로바로 각본을 만들어 낸다. 가만히 명상을 해보면 우리의 뇌가 얼마만큼 신호를 빨리 주고받는가를 알 수 있다. 이 신호들로 인간은 스스로의 모든 움직임을 통제한다.

    “이러한 각본이 서로 만나는 것이 '인연'이다.”

이 인연의 만남에 의해 우리의 각본은 수정된다. 아침에 버스를 타러 가다가도 우연히 친구를 만나게 되어서 택시를 타고 갈 수도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이다. 그래서 인연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서로 복잡한 각본의 합주곡이 바로 자신이 평생 겪는 인연인것이다.

개개인의 각본이 만나고 그 각본 속에 다른 각본이 생겨나고 없어지고 분열하고 합쳐진다. 각본들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똑같다. 서로서로 모여서 집단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이 공동체는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가족, 직장(학교), 모임, 지역, 국가로 커진다.

이렇듯이, 우리는 항상 각본 속에 있다. 이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 왜냐하면, 현재의 모든 행복, 불행의 시작이 바로 이런 각본에서 비롯된 인연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선한 인연을 만들 것인가?
악한 인연을 만들 것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因果)'의 핵심이다. 이것은 모두가 자기 자신의 선택이다. 옛 성인께서는 이 인연 속에서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예수 -

몇 천 년 전부터 이러한 이치를 아시고 바른 법도를 알리시고자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가? 그럼에도 현재까지 법도를 알지 못하여 고통받는 사람이 생겨나고 그에 대해 2차, 3차로 고통이 전파되고 대물림되는가?

필자도 불경, 성경을 심도 있게 읽어 봤더라면 과거에 겪었던 아픔은 매우 작았을 것이다. 나 자신을 믿으며 살았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옛 성인들의 행적을 읽으며 감동 받았고 고통을 해소함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분들을 기리는 종교에 대해서 많은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인 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현재의 인연과 앞으로 다가올 인연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고 비록 자신에게 해를 끼쳤던 인연일지라도 악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인신공격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자신을 업신여기는 자는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비록,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상대방이 업신여기는 말과 행동을 한다면 분노하게 된다. 말과 행동으로 업신여기지 않고 생각만 하더라도 우리의 본능은 그 미세함을 100% 알아차린다. 상대방의 눈빛과 표정에서 그대로 전달돼 오는 것이다."

아직 세상을 살아갈 특별한 처세술이 없다면 올바른 종교를 찾아서 갖고 그 선지자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같이 어울리고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위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기억하자.

    "우리는 항상 각본 속에서 살고 있다. 타인의 각본에 의해서 나의 각본이 수정될 수 있고 나의 각본에 의해서 타인의 각본이 수정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나와 타인의 인연에 대해 항상 소중하게 생각하고 악한 인연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항상, 좋은 생각으로 좋은 표정을 짓고 좋은 말과 행동만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행복만을 전파한다는 생각을 하자."

네,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루에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시나요? 뇌에서 각본이 만들어지는 이치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은요. 그 모든게 자신의 과거 경험과 현재 자신에게 필요한것이 혼합이되서 각본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사항들에 대해서는 전혀 각본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구요. 현재 그런쪽에 공부를 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이 말인즉, 자신이 앞으로 해야될 일에 대해서 현재의 자신이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에 있는 것이죠. 그것 또한 각본입니다. 우리가 어렸을때부터 지금 현재 자신의 모습이 될때까지 우리는 많은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그 보고 배웠던 과정속에서 현재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부분들과 또, 배움속에서 감동을 받았을때 이런것들이 종합되어서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는 그것에 대한 각본이 전부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계속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죠. 자신이 오늘 하루를 계획하구요. 앞으로의 일주일, 한달, 일년을 계획하고.. 이러한 계획을 쭉 짜 놓으면서 중간에 변화를 겪게되죠? 그 변화를 겪게되는 계기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그 사람들의 각본에 의해서 나의 각본이 수정이 되었던지 하는 경우에는 수정이 되가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지금은 혼자서만 살아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됐잖아요. 그런 상황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자신의 각본과 타인의 각본이 만나는 지점들이 있어요. 이런 지점들 때문에 자신의 계획이 계속 달라지게끔 되어있죠. 그것 또한, 각본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개인의 계획과 타인의 계획이 만나지게 되는 현상. 이것을 우리가 '인연'이라고 하는데요. 그 인연의 만남 또한 각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은 '이 세상 모든게 다 짜여진 것이냐? 내가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물 마시고 밥먹고 뭐하고 뭐하고 했던게 전부다 그럼 앞으로의 일이 다 정해져서 그렇게 하는 것이냐?'라는 말을 할 수가 있는데요. 그것은 절대 아니구요. 이것을 올곶이 다 설명을 할려고 하면 '바다에서 파도가 치고 있는 현상'을 다 설명해야 하는 것처럼 너무나 복잡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현대의 여러사람이 모여서 살아가고 있는 속에서는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이것을 인지하고 살아가는게 좋을까?'라는 고민을 했구요. 그것에 대한 기준을 적어놓은 것이에요. 그러니까 현대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이 정도의 기준을 갖고 살아가는게 좋겠다.'라는 기준을 적어놓은 것이죠.

'내가 가지고있는 계획과 다른 사람이 가지고있는 계획이 만나지는것.' 그것을 우리는 '인연'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구요. 그 인연들의 만남속에서 일이 자꾸 만들어지죠? 그래서 단체가 만들어지기도 하구요. 그 단체가 만들어져서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연과 각본속에서 이루어지는 '각본'이라는 것이죠.

말이 좀 애매한가요? ㅎㅎㅎ 제가 <제8회 집필을 결심하며>에서 써놨던 것처럼 여기에 써진 내용은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이 이상 어떻게 표현을 못하겠어요. 이 깨달음이라는 것이요. 말로는 다 표현을 할 수가 없거든요. 파도를 다 설명해야되는 것처럼 너무나 복잡하다 보니까 자신이 직접 느껴야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느낄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것이죠. 그래서 자신이 아침에 일어나서 현재까지 해왔던 일 그것이 자신의 뇌에서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각본인데 그 각본을 시행을 하면서 또다른 사람도 그런 각본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을것 아니에요? 그런 각본들이 사회에서 계속 만나지고 있어요. 그것을 우리는 '인연'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구요. 그 인연들이 만나지고 헤어지고 모여지고 흩어지고 커지고 작아지고 하면서 사회활동을 계속 하고 있거든요. 이런 일련의 상황들을 '각본'이라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상황들이 다 짜여진것은 아니지만 '일정한 흐름이 있다.'라고 생각을 할 수가 있겠죠? 이 세상은 일정한 흐름속에서 굴러가고 있습니다. 마치 바다에 해류가 있어서 바다를 계속 돌듯이 이 세상도 일정한 흐름이 있어서 그 흐름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그것을 저는 '각본'이라고 표현을 했구요. 그 큰 흐름들.. 그러니까 배가 해류가 돌아가는 이치를 다 알고서 항해를 하면 아주 편안하게 항해를 할 수가 있죠? 근데, 해류가 흐르는 이치를 전혀 모르고서 항해를 하다보면 그 해류에 휩쓸려서 조난이 되기도 하구요. 난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바다에서 항해를 잘 할려면 바닷길을 잘 알아야 되듯이 해류가 돌아가는 이치를 잘 알게되면 여행을 아주 편안하게 할 수가 있는것이죠. 저는 그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은 일정한 흐름, 일정한 각본에 의해서 돌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큰 흐름에 위배되는 행위를 개인이 한다던지 하면 그 개인은 고통스럽겠죠? 고통을 받게 됩니다. 마치 해류를 거슬려서 수영을 하는 것처럼 길을 가는데 너무 힘든 것이죠. 그래서 그러한 큰 흐름을 알면 우리가 '이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내가 나에대한 계획을 조금 잘 못 잡고 있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흐름을 딱 잡을 수 있는것은 무엇일까요? 어떤것을 기준으로 그 흐름을 잡을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지금 모든 정보들을 통해서 알수가 있습니다. 뉴스라든지 각종 정보들이 있죠?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 그리고 사람들간의 대화. 이런것들을 통해서 '아! 세상이 지금 어느쪽으로 흘러가고 있구나.' 그러면 그 큰 흐름에 올바르게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역행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알수가 있겠죠? 잠깐 고민이 들었어요. '이것을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이야기를 해야되지?'하는.. 예전에 '육식동물이 육식을 하는 것도 이상한 현상이다.'라고 말을 해야되는 그 정도의 수준으로 이야기를 해야되는 건지 아니면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알아먹을 수 있는 정도로 이야기를 해야되는 건지 잠깐 고민이 들었습니다.

현재 사회에 뿌려진 작용들은 틀린 작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큰 이치에서 보자면 모든게 옳은 작용입니다. 그러니까 풀 한포기가 있는것과 백두산이라는 큰 산이 있는 이치가 모두다 옳다는 것이죠. 그 풀 한 포기가 잘못된것이 아니구요. 백두산이 잘못된것이 아니구요. 둘 다 옳습니다. 좀 더 알기쉽게 이야기를 하자면요. 제가 지금 이런 작용을 하는것과 이런 작용을 될 수 있으면 막아볼려는 작용이 둘다 옳다는 것입니다. 이미 세상은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구요. 움직이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이 세상에 뿌려져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치속에서 돌아가는 이 세상에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내용들을 말할 필요는 없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알지 못함으로써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말을 할려는 것이구요. 그것을 알림에 있어서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많거든요. 그러면 자칫 긍정보다는 부정에 빠질 확률이 높아지구요. 이 세상의 흐름이 약간 늦춰질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제가 하는 작용과 이것을 될 수 있으면 축소하고 막아보려는 작용이 둘 다 옳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완벽하게 설명을 할려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고정관념을 제가 깨야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굉장히 큰 파도를 겪을 수 있어요. 제가 겪었던 파도를 그대로 겪을 수가 있죠.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불행해질 수가 있는것이죠. '아무것도 모른체로 행복에 빠져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자칫 불행에 빠질 수가 있다.'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작용이 분명히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실을 알면 알수록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현재 세상에서는 그렇습니다. 참 난감한 상황이에요. '아! 이것을 알아야만 큰 고통을 받지 않는데..' 이것을 알리는 과정이 참 힘들다는거죠. 그것을 알아서 그것에 맞춰서 살아갈려는 과정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잘 알지 못하도록 많은 베일에 쌓여있어요. 그 상태로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죠. 그래서 잘 알지 못하는 상태로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라고 생각을 하면서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진실이라는 관점으로 봐서는 참 안된 작용이죠. 근데, 행복이라는 관점으로 봐서는 그게 옳은 작용 이거든요. 그래서 저처럼 알리려는 작용과 그것을 될 수 있으면 축소하고 막으려는 작용이 둘 다 있습니다. 어느쪽이 틀리거나 맞는게 아니죠. 둘 다 옳습니다. 그래서 현재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게 좋은가? 그것을 항상 고민을 많이 하게 되구요. 그 정도의 수준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각본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구요. 자기가 행하는 일련의 모든 행동들이 다 짜여진것이 아니지만 해류가 흐르는 것처럼 일정한 방향이 있어서 그것에 다 맞춰지고 있다. 이 정도의 인식을 갖고 살아가면 큰 탈이 없을 것입니다. 국가의 지도층 정도가 될려면 이것을 어느순간 깨닫게 됩니다. 당연히 그렇게 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만 지도를 할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 사회활동을 하면서 앞으로 지도자가 될 사람들, 지도층이 될 사람들, 또 그런 계획을 갖고 있는 사람들. 아니면 '나는 그냥 행복의 관점으로 살고 싶다.'라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이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일정한 흐름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 그 흐름의 방향이 아주 큰 흐름에서부터 작은 흐름까지 복합되어 나타나 있는것이 현재의 사회다. 그러면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과 내 머릿속에서 하루에 일어나는 생각들이 과연 어떤 작용에 속해있는 것인가?'라는 것을 자기 자신이 인지를 하게되는 순간. 그 순간이 작은 깨달음부터 큰 깨달음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작용속에 있습니까? 자신이 하루중에서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들이 무엇이 있습니까? 또, 해보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현재 노력이 잘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노력이 잘 안되고 있습니까? 그 노력이 자의에 의해서 잘 되고 있습니까? 타의에 의해서 잘 되고 있습니까? 또는, 자의에 의해서 잘 안되고 있습니까? 타의에 의해서 잘 안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런 복잡한 작용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각본을 계획을 잘 짜야되겠죠? 사춘기가 지나서 어느 정도가 되면 자기 인생의 계획을 짤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 그 정도의 나이에 계획을 세우고 자신을 그 흐름에 맞춰서 계속 살아가다보면 행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매끈한 조약돌이 되어가겠죠? 내 각본과 타인의 각본이 만나는 그 접점들에 의해서 자신이 다듬어지고 단련이 되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큰 흐름들에 대해서는 굳이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작용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느 정도의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꼭 알아야 될 사람들은 알고 있죠. 그리고 굉장히 희망적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이 세상이 앞으로는 좀 더 좋아지겠다.'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도 됩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상처받는일이 많았죠? 현대 사람들은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것 같아요.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면 굉장한 불행에 처해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상처를 겪더라도 금방 회복할 수 있는 도구 하나쯤은 자신이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절대로 악한 인연을 만들어서는 안되구요. 좋은 인연만 만들어야 됩니다. 그런데 항상 우리가 겪는 문제는 그 사이에서 일어나죠? 나는 좋은 인연만 만들고 싶은데 '저 사람이 문제다.' 이런거.. 그 사람한테는 어떻게 해줘야 되겠습니까? '그 사람이 잘 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면 됩니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에 따라서 그 사람에게 맞는 방법으로 깨닫게 해주는 것이죠.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이라든지 말로써 전달을 해주면 그 사람이 직접 보고 듣고 해서 스스로 깨닫는것이 가장 좋은데요. 그런 정도의 사람들은 이미 다 깨닫고 있거든요.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서 상처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죠. 그러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참 고민스러운 상황이에요. 범죄자의 심리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은요. 자신이 범죄를 저지를때는 그것을 인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범행이다.'라는 것을.. 순간순간 인지는 할 수 있을지언정 그 행위를 함에 잊어버리고 그 행위를 해버리죠. 그런데 그 범인이 '아! 내가 죄를 지었구나.'라고 깨닫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법정에 섰을때? 또는, 경찰관을 만났을때? 아니면, 진술을 할때? 아니면, 실제로 수감이 되어서 형을 살때? 아니면, 사회에 다시 복귀 했을때? 어느때 일까요? 그것은 사람마다 다 틀리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 과정을 다 겪고서 사회에 복귀를 했는데도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죄를 저지르는 과정 속에서 '아! 이게 잘 못 됐구나.'라고 깨닫고 그 죄를 더이상 저지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겠죠. 또는, 법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술을 할때 그때 깨닫는 사람들이 있을테구요.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죄는 그 죄를 저지른 사람이 깨닫는 순간 사라집니다. '아! 내가 죄를 지었구나.'라고 깨닫는 순간부터 그 죄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벌이 시작이되죠. 그 죄를 저지른만큼 자신은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교도소 수감이라는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구요. 아주 많은것으로 나타나지죠. 자신의 죄책감으로 나타날 수도 있구요. 사회봉사로 나타날 수도 있구요. 수행으로 나타날 수도 있구요. 아무튼 자신이 저질렀던 죄만큼 그게 씻기어 질때 까지는 그 형벌의 형태로 자신이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교도소에 수감이 되어 있을지라도 자신이 '내가 죄를 지었구나.'라고 깨닫지 못한다면 자신은 지금 벌을 받고 있는게 아닙니다. 그 죄도 사라지지 않고 있죠. 그래서 다시 풀려났을때 또 다른 죄를 짓겠끔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겪는 각본은 무엇일까요? 어떤 작용속에 있길래 그렇게 항상 죄를 짓게되고 그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 죄를 쌓아가고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제가 처음에 말했던 '큰 작용에 역행을 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상처를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현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갖추어야할 역량 이거든요. 어떻게 하면 이 상처들을 잘 극복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갈까? 이것을 빨리 가르쳐야 됩니다. 될 수 있으면 이른 시간에 가르쳐야되죠. 사춘기가 지나서 인생의 계획을 세우는 그때 가르쳐주는게 좋을것 같구요. 그 이전부터서라도 이미 좋은 작용속에 들어가도록 유도를 해주는게 좋겠죠? 그렇다면 큰 죄를 짓지 않게끔 되잖아요. 큰 작용을 거스르지 않으니까요. 다들 지금 그것을 몰라서 죄를 짓게 되는것이고 자기가 죄 짓는것을 모르고 모르고 그렇게 쌓아 가다가 결국에는 큰 형벌을 받는 것이거든요. 큰 작용을 거스르는 작용을 절대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으로 '선한 인연을 만들 것인가? 악한 인연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지고 선한 인연만 만들고자 하더라도 큰 작용에 역행을 하게 되면 선한 인연을 만들고자하는 모든 사람들이 악한 인연으로 바뀌어 버리거든요. 자신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버리구요. 계속 죄인이 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의 핵심이죠. 원인과 결과. 자업자득 이다. 모든게 자신의 탓이다.

좋은 작용이 나쁘게 나타나질 수가 있구요. 나쁜 작용이 좋게 나타나질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아침에 잠을 깨워주려고 엉덩이를 심하게 때리는 가족이 좋은 작용이 나쁘게 나타나는 경우이구요. 사기꾼이 아주 잘 포장된 모습으로 와서 감언이설로 구슬려서 돈을 빼앗아가는게 나쁜 작용이 좋게 나타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매질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라고 생각을 해서는 안되구요. 과연, '이 매가 올바른가?'를 먼저 생각을 해야됩니다. 그래서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도저히 이것 저것을 모르겠다. 머리가 복잡하다.'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요. 현재 세상에 종교가 많이 있죠? 올바른 종교를 찾아서 그 선지자께서 말했던 말을 따르면서 거기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머리 복잡하게 생각을 하지 않아두요. 자신이 큰 작용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중에 한가지 입니다. 그 큰 작용의 자정작용들은 그 종교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겪겠죠.

그래서 오늘 우리가 기억할것은 그런것입니다. "세상은 일정한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은 아주 큰 흐름부터 아주 작은 흐름까지 있고 그 흐름에 역행을 하게 되면 악한 인연이 지어지게 되고 자신이 고통받고 죄를 짓게 되므로 큰 작용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선한 인연을 만들어 가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좋은것이 나쁜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고 자신에게 나쁜것이 좋은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은 좋은 표정을 짓고 좋은 것만 전파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굉장히 좋다." 라는게 오늘 아홉번째 방송에서 하고 싶은 말입니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다들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맘야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맘야가 바라보는 세상. 오늘 이야기는 이만 마치겠습니다. 현재시각 16시 03분을 지나고 있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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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하늘  (0) 2017.01.13
제6회 행복과 포옹  (0) 2017.01.10
제5회 마음 다스리기  (0) 2017.01.06
제4회 부자가 되는 법  (0) 2017.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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