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야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제8회 집필을 결심하며 본문
<방송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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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보기>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watch?v=uy8bZYpuXDo&index=1&list=PL18_TeFgN9R1hhNV3VSttdW9_7WqAX6PK
카카오TV - https://tv.kakao.com/channel/2687112/cliplink/301928396?playlistId=73108&metaObjectType=Playlist
<방송 내용>
안녕하세요? 맘야입니다.
오늘은 2017년 01월 16일 월요일입니다. 오늘부터 날씨가 풀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갑자기 한파가 닥치는 이유가 있겠죠? 날씨가 균등한게 좋습니다. 뭐든지 갑작스럽게 변하는것은 그다지 좋은게 아니거든요. 갑자기 추워진다던지 갑자기 더워진다던지.. 그것은 마치 잔잔한 물에서 큰 파도가 일어나는 것처럼 그 파도에 원인이 있어서 파도가 치게되는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날씨가 갑자기 변동을 하는 것은 '세상에 이치'로 봐서는 그다지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날씨가 항상 맑고 화창하고 하늘이 깨끗하고 이런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맘야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8번째 주제는요. 제가 '세상에 이치'를 쓰게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책을 쓰게된 계기는요. '집필을 결심하며'라는 글에 아주 잘 나타나 있는데요. 인생의 파도를 심하게 겪으면서 깨달은것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깨달음을 얻는..굉장히 큰 파도를 겪으면서 '이렇게 큰 파도를 겪지 않아도 되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를 굉장히 많이 생각 했거든요. 그래서 글을 쓰고 싶었구요. 그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세상은 이렇게 저렇게 이루어져있고 일이 이렇게 되면 이렇게 큰 파도가 치게되니 그런 큰 파도를 겪지 않고서 어떻게 하면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그것과 '파도들이 일어나는 원인.' 그런것들에 대해서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런 파도를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파도를 겪을 필요가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지금 세상에는 무수한 파도들이 많이 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유능한 선장, 항해사, 간판장, 선원이 되야 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의 파도에서 난파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파도가 많이 치고 있는 지금은 유능한 뱃사공이 되는게 행복해지는데 또 사는데 유리하기 때문에요. 그런 유능한 뱃사공이 되기위한 기초중에 기초를 '세상에 이치'로써 남기고 싶었습니다.
제 블로그 맘야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책이야기/책-세상에이치'라는 카테고리에 보시면요. '집필을 결심하며 :: 세상에 이치'라는 글이 있습니다. 2014년 09월 03일에 올렸구요. 아직까지 최종 수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 글은 수정을 안해도 될 것 같습니다. 몇 번을 읽어봐두요. 그 당시의 제 결심이 또, 그 당시의 깨달음이 아주 정확하고 결심이 굳었음이 잘 나타나 있거든요. 우선,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014/09/03 - [책 이야기/책 - 세상에 이치] - 집필을 결심하며 :: 세상에 이치
집필을 결심하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태어났을까?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떠오르는 물음이다.
필자는 2013년 7월부터 이러한 물음에 스스로 답해야 했다.
생각의 미로에 빠졌었다.
옥고를 치르는 고통이었다.
39년간 내가 가지고 있던 물리적인 나 자신과 내가 바라봤던 세상을 다시 정의 내려야만 했다. 엄청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그 여파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것을 몸으로 느꼈고 생각으로 깨달았다.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에도 많은 부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환자들을 많이 보았다. 이 책이 그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인생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과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청소년에게 길을 인도하고 싶다.
내가 겪은 고통을 다시는 누군가가 겪지 않게 하고 싶다.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그 고통은 절대 알 수 없다. 그래서 독자 중에서 내가 겪었던 어려움을 겪었거나 앞으로 맞닥뜨렸을 때 이 책이 간접적으로나마 독자의 마음에 희망의 등대가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한 번쯤 발을 헛디뎠거나 고통의 길로 들어선 자신을 구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고통에서 빨리 탈출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어느 정도가 행복이고 불행일까?
가장 어려운 질문이 아닌가?
이것을 몰라서 다들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필자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내 옆에는 항상 가족, 지인이 있습니다.”
“나는 행복, 불행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위의 두 가지가 만족하면 행복한 것으로 생각한다. 반대로 위의 두 가지가 만족하지 않으면 현재 불행 하거나 불행의 길로 가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도 이 책을 한 번쯤 읽어 봤으면 좋겠다.
필자는 지옥의 나락에 떨어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앉아서 집필하고 있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앞으로도 계속 행복으로 올라가는 것만이 남아있다.
“현재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책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쓸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표현되는 불행에 대해서는 그것을 접하는 독자가 행복을 알기 위하여 불행이라는 단어를 읽을 필요가 없고 불행한 일을 간접 경험할 필요도 없다. 상대성의 원리로 행복은 불행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가진다. 불행을 앎으로써 행복의 가치를 알 수 있지만 이미 행복한 사람은 굳이 불행을 알 필요가 없을뿐더러 앞으로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불경, 성경에는 행복을 느끼는 단어가 많지만, 고통, 죽음, 징벌 등등의 단어가 왜 그리도 많이 나올까? 그 이유는 행복의 이면이 곧 불행이기 때문이다.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의 차이다. 행복을 설명하기 위해 불행을 말해야 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이 또 있을까?
이 책에 쓰는 내용은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이다. 타인의 경험을 간접적인 글로써 느낀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도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을 독자가 알기 쉽게 글로 표현하고자 노력하려 한다. 이 책에 종교의 내용이 있더라도 그것은 인용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아주 많이 행복한 사람이 불행해질 확률은 극히 드물다. 행복, 불행이 종이 한 장의 차이지만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것은 아니어서 행복의 내공이 많이 쌓여 있을수록 불행에 대해 면역이 높아져 있으므로 자기 자신을 불행으로부터 보호할 수가 있다.
필자는 지금까지 행복을 좇아 살아왔었다. 그러던 중 그때 내게 던져진 불행은 말과 글로는 표현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만큼 힘들었었다. 닥친 불행에서 벗어나려 애쓰면서 여기저기를 다녔다. 불행을 피하려 애썼지만 애처롭게도 더 불행한 곳으로만 찾아 들어가고 있었다. ‘이보다 더 불행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한탄했다. 현재도 행복하지는 않다. 단지, 불행의 폭풍을 이제 막 거의 피했을 뿐이다.
“행복은 불행을 벗어나면 오는 것인가?”
“행복과 불행은 따로 존재하여 서로 공존 하는 것인가?”
이 과제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고민해보고 싶다. ‘세상에 이치’라는 거창한 문구를 써봤다. 내가 고생하며 몸으로 느끼고 생각으로 깨달은 것들이 ‘세상에 이치’가 아니면 무엇일까?
'들은 것은 잊어버리고, 본 것은 기억하고, 직접 해본 것은 이해한다.' - 공자 -
세상에 이치가 올바르게 전파되어서 이 세상이 어서 빨리 평화로워졌으면 좋겠다.
2014년 8월 31일
나의 행복과 세상의 평화를 꿈꾸며
네, 여기까지입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한 평생을 사는데요. 제가 지금까지 경험해본 바로는 언젠가 한번은 이런 생각을 하는것 같습니다. '나는 누구지? 왜 태어났지? 이 세상은 뭐지? 어떻게 이루어졌지?' 누구나 한번쯤..그 시기가 빠르고 느리고 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한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ㅎ 왜 태어났을까요? ㅎㅎ 그리고 누구일까요? 우리들은.. 이 세상은 도데체 뭘까요? '세상'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요. 이 '세상'이 바로 '인간들이 살아가는 곳.' 그런 뜻입니다. 그럼,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라는 질문은 '인간들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말과 같거든요.
우리가 태어나면서 철들기 전..저의 기준으로 봐서는 '군대를 갔다오기 전'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저는 군대를 갔다와서 철이 들었거든요. 철들기 전까지 아무것도 몰랐죠. '이 세상이 뭔지.. 내가 왜 태어났는지.. 내가 누구인지..' 이런 고민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구요. 그냥,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고 뛰어놀고 때로는 화나고 ㅎㅎ 괴롭고.. 그런 하루하루를 겪으면서 막 자라나다가 어느 순간이 되니까 철이 들었어요. 철이 들어서 '이런것은 잘못이고 이런것은 좋은것이고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거죠. 그렇게 지내다가 2013년 07월에는 이런 질문들이 제 자신 스스로 하게됩니다. 그리고 책을 쓰기로 결심한 2014년 09월.. 그러니까, 이 질문을 시작한 2013년 07월에서 책을 쓰기로 결심한 2014년 09월까지는 만 일년정도의 시간이 걸렸네요. 그때 이미 결론에 도달한것 같아요. 그리고 그 일년동안..엄밀히 말하자면 일년동안은 아니구요. 일주일 이었습니다. 이 질문을 시작하고 일주일동안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엄청난 분량의 생각이 밀려들어 왔었어요. 그리고 깨달음을 얻었죠.
"아! 와! 이런것이었나!"
그 나머지 시간들은..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 일년후라든지 혹은, 지금..지금은 2017년 01월 이니까요. 만 삼년 하고도 육개월 정도가 되가죠? 이 기간은 그 짧은시간에 얻었던 생각을 확인하는 절차였을 뿐입니다. 그만큼 이 생각, 깨달음이라는것은 한 순간에 밀려 들어오구요. 나머지 시간들은 그것을 확인해보고 검증해보고 실천하고 자기것으로 만드는 시간들인것 같습니다.
이때..그 생각들이 밀려 들어왔을때요. 완전히 미로속에 빠졌었습니다. 그러니까, 생각이 정리가 안되었던거죠. 기존까지 알고 지냈던 내 자신과 내가 바라봤던 이 세상이 생각속에서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어요. 제가 옥고를 치뤄보지는 않았지만, 옥고를 치뤘다면 그런 고통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옥고를 치루는 고통처럼 모든 생각들을 다시 정리를 해야 됐었습니다. 아주 어렸을적부터 현재까지의 일이 다 떠올랐구요. 그 떠오른 일을 현재 가진 깨달음으로 다시 정리를 했었어야 됐어요. 그러면서..'멘탈붕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 멘탈붕괴가 수십번 이루어졌죠. ㅎㅎㅎ 정말, 그때를 생각해보면 뭐라고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이 다 뒤집어지면서..솎아지면서 다시 재편되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꼭, 농사로 치자면 '겨울이 끝나서 씨를 뿌려야되는 시기에 땅을 경작하는 작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다 뒤집어버렸죠. 다 뒤집혀서 다시 분해되서 재조립되고 하는 과정을 2013년 07월에 겪었던 것입니다. 이런 인생의 파도가 '누구한테라도 온다.'고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근데 이 파도가 '어마어마하게 큰 배도 침몰을 시킬 수 있다.'는 삼각뿔 파도인지 아니면 굉장히 낮으면서도 긴 부드러운 파도인지.. 그것은 이 '현재의 세상에 어떤 파도들이 치고 있고 어떤 작용들이 일어나고 있느냐.'에 따라서 '겪는게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얻었던 깨달음과 현재 상태의 세상 그리고 제 자신의 행복> 이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어떻게 해야만 그런 것들이 다 좋아지고 나도 행복하고 남들도 행복할 수 있을까? 그것을 굉장히 많이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결론은, 책을 쓰는것이었습니다. 일단은 '이런 작용들이 있다.'는것을 알려야 됐구요. 그것을 사람들이 다 알게되면 '자기 자신이 지금 잘하고 있는지 잘못하고 있는지를 깨닫게되고 그로 인해서 이 세상이 평화로워질 수 있겠다.' 그렇게 되면 '나 자신도 자연스럽게 평화롭고 행복해지는 것이고 또,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 후손들, 또 그 후손의 후손들까지도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한것이죠.
이 책을 쓴지 2년이 넘었네요. 그 2년동안 세상이 많이 좋아졌을까요? 글쎄요. ㅎㅎㅎ 이것은 당사자분들이 느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라서 저는 확실한 말은 못하겠습니다. 분명히 좋은 방향을 제시를 했구요. '그 방향으로 선회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3화 방송>에서 말씀을 드렸듯이 방향을 급격하게 바꾸는것은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세상에 뿌려진 작용들 때문에 일어나는 파도가 있는데 너무 방향을 급격하게 틀어버리면 위험하거든요. 그래서 '서서히 선회를 하는 상황에 있다.'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서 이 세상에 큰 파도들이 치지 않는다면 제가 겪었던 고통을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과 후손들의 후손들은 겪지 않아도 되겠죠? 그래서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책을 쓰게된 것이구요. 이 책을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봤으면 좋겠고 특히, 자신이 '나 불행한것 같은데.. 자존감이 낮은것 같은데.. 우울한데..'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보기를 강력 추천합니다.
지금 세상에는 환자들이 많죠. 아픈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돌아다녔던 시간동안 아픈 사람들을 굉장히 많이 봤거든요. 그분들한테도 분명히 이 책이 도움이 되구요. 그분들은 전부다 나을 수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요. 근데, 생각을 바꾸지를 못하니까 안 낫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것을 바꿔줄 수 있는 계기가 이 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 기준으로 생각한 '행복' 두가지를 말씀을 드렸는데요.
“내 옆에는 항상 가족, 지인이 있습니다.”
“나는 행복, 불행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이 두가지가 만족하면 행복한 것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지금 자신의 주위에는 가족이 있나요? 또는, 친한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죠? 좋은 사람들인가요? 그것 때문에 그 사람들과의 대화 또, 앞으로의 계획, 만남 자꾸 이런일들이 생기면서 제가 처음에 말했던 그런 생각이 들지 않나요? 처음에 말했던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죠? '나는 누구지? 이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졌지? 나는 지금 행복한가? 불행한가?' 이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상태로 그 사람들과 계속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나요? 이런 대화들이 있잖아요? '우리 이번 주말에 뭐 할까? 어디 갈까? 뭐 맛있는거 먹을까? 저기가 좋다던데 저기 가볼까? 오는 여름에는 뭐할까? 지금 이런것들이 유행이라던데 우리도 가서 구경해볼까? 뭐할까? 뭐하지?'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계속 일어나는.. 그래서 자기 자신이 행복한 쪽으로 유도가되는 작용속에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행복한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행복은 바로 그런것이죠.
근데, 저와같이 큰 파도를 겪어버리면 그런 작용이 끊겨버려요. 그러니까 안좋은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는것이죠. 갑자기 주위에 가족이라든지 친한사람이 없게 되구요. 행복, 불행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됩니다. 그 상태가 행복하지 않은 것이에요. 그러면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좋은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가야됩니다. 좋은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가서 그 사람들과 좋은 대화를 하면 자연스럽게 좋은 작용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저는 쇼셜서비스에 글을 쓸때 그런 말을 자주하죠? 지금 고통에 빠져있고 '자신이 형벌을 받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종교시설에 가서 반성을 해라. 그러면 거기에는 천사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길을 안내를 해준다. '이거하자. 저거하자. 이거 해봅시다. 이렇게 합시다. 저렇게 합시다.' 하면서 행복으로 유도를 계속 해주고 있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행복..인간으로써 행복하게 사는 법은 높은곳에 있는게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 주위에 있죠. 근데,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을때는 어떻게 하죠?'라는 질문을 할 수가 있는데요. 그것은 앞전에도 여러번 이야기를 했어요. 조약돌이 만들어지는 과정, 섞임의 과정, 거기에서 일어나는 필터들의 작용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나고 자라면서 친구가 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하고 어느 순간 보니까, '이 사람과는 굉장히 친했었는데 멀어졌고' 이런 것들이 상호 작용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이거든요. 그래서 항상 가족, 지인과 함께 할려고 노력을 많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은 행복한 쪽으로 흘러들어가게 되구요.
그 조약돌이 되어가는 과정속에서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준.. '이게 좋고 이게 나쁘다. 이건 해도 되고 이건 하면 안된다.' 그런 기준을 잡을 수 있는게 바로 성인분들께서 말씀하셨던 말씀과 남겨진 글들 그리고 제가 말하고 있는 말들과 제가 쓴 책. 이것이 기준이 됩니다. 그 기준으로써 좋은것과 나쁜것을 구별을 해가면서 사람들을 자꾸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친해지다 보면은요. 자신은 어느 순간 굉장히 행복해져 있을 거에요. 그래서 '현재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라고 적어놨는데요. 그런 과정을 아주 잘 겪어가지구요. '자신의 오대조 할아버지부터 현재까지' 그런 작용을 잘 겪어서 현재 아주 행복하다면 굳이 이 책을 읽어서 '이런게 불행한 것이구나.'라는 것을 배울 필요가 없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것을 적어놓은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서도 아주 행복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을 보면 항상, 제가 말했던 작용들이 일어나고있는 사람들이죠. 항상 계획이 있구요. '앞으로 뭘 할까?'가 정해져있고 그것을 하면서 '세상에 이치'에 맞는 기준으로써 판단을 해서 자기 자신이 아주 매끈한 조약돌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죠. 그런 분들은 굳이 이 책을 읽으면서 뭐가 행복이고 불행이고 이런 것을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그 행복을 계속 느끼시면되요.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것이죠.
그러면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불행한 사람들일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물론, 불행에 빠져서 '어떻게 헤어날 수 있지'라는 방법을 알고 싶어서 정보를 찾는 분들이 꼭 읽어야되는 책이기는 하구요. 다른것으로는, 기준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뭐가 옳고 그른지를 잘 몰라요. 물론,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것을 다 깨닫게 되지만, 나이가 어리거나 인생 경험이 적거나 하는 사람들은 뭐가 옳고 그른지 잘 모르거든요. 그리고 세상이 혼탁하고 큰 파도들이 많이 치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모를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자칫 불행에 빠져들 수 있는 여지가 큰 것이죠. 그래서 그러한 것들에 대한 기준. 이렇게 말해보자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해당이 되겠죠. 제가 말했던 '행복'이라는것에 딱 맞아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간혹, 매스컴을 통해서 그런 사람들을 종종 접합니다. '아! 이 사람은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딱 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근데, 그런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이런 기준들을 알고서 모든 사람들이 생활을 한다면 행복으로 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겠죠. 그런 작용들이 좋은 작용들입니다.
2014년 09월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었네요. 한 일년동안 굉장히 힘들었고 '불행했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때도 '불행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구나. 이제 막 큰 폭풍을 피했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2017년 01월 16일인 오늘은 '그것보다는 더 많이 좋아졌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준으로 봤을때요. 여기에 적어져 있는 것처럼 행복은 불행을 벗어나면 오는 것일까요? 아니면, 행복과 불행은 따로 존재해서 서로 공존하는 것일까요? 이 책을 쓸 당시만 해도 그것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독자들과 함께 고민해보고 싶다.'라고 썼네요. 지금 와서는 결론을 내릴수가 있을까? 글쎄요. 지금도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이 행복과 불행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는것 같아요. 그래서 결론을 못내리겠어요. 한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네요. '행복과 불행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하나입니다.' 이 말뜻은 자신이 '행복한게 불행이다. 불행한게 행복이다.'라는 섞임이 아니구요.' 같은 상황일지라도 어제는 행복했는데 오늘은 불행을 느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행복, 불행이 따로 존재해서 행복만 찾아오고 불행을 멀리하고 이런게 절대 아니라 자기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것이 행복이죠. 그러면 행복과 불행. 불행을 벗어나면 행복. 이 말은 틀린말이 되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에 대해서 결론을 내려버리면 행복, 불행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생겨버리는 것이거든요. 그런 절대적인 기준은 세상에 필요치 않을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행을 벗어나면 행복이 오는것이다.'라는 명제는 옳은 말이 아니구요. '행복과 불행은 따로 존재한다.'라는 말도 옳은 말이 아닙니다. 행복은 '자기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것'이 행복이고 '행복과 불행은 다 자기 자신이다.' 이 정도의 기준이 적당할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고민을 한 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런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 세상은 행복해 질 수 있거든요. 그리고 성인이셨던 공자님의 말씀으로 적어놓은 것이 있는데요. 우리가 들은것은 금방 잊어버리죠? 근데,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본것은 기억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직접 해보는것들..경험이죠. 경험한것은 그것에 대해서 이해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아무리 떠들어봤자 들은 것은 다 잊어버리죠. 사람들이..ㅎ 그리고 그것을 봤다. 깨달음을 보았다. 깨달음을 볼 수가 있을까요? 아무튼 그 깨달음을 본 사람들. 그 사람들은 기억하겠죠. 그리고 제가 겪었던 것처럼 어느 순간 깨달음을 직접 경험해보면 그것에 대해서 이해를 합니다. 그러면 제가 하고 있는 일련의 행동들. 글을 쓰고 팟캐스트 방송을 하고 이런것은 어찌보면 들려주는 것이죠. 제가 겪었던 경험과 깨달음 그런 것들을 들려주는 것인데 이것을 사람들은 다 잊어버리겠군요. ㅎㅎㅎ
그게 어찌보면 정상입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다 기억하고 있다면 정서가 망쳐질 확률이 매우 높죠. 현재 세상에서는 그렇습니다. 현재 세상에서는 망각하는 기술이 필요해요. 그래서 우리는 자꾸 잊어버리죠. 세상이 혼탁하면 혼탁할수록 사람들은 더 자주 잊어버립니다. 그게 또 '세상에 이치'입니다. 왜냐하면, 정서를 지키기 위해서 망각이라는 스킬을 발동하는 것이죠. 그것은 무의식의 작용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했던 말을 일주일후면 다 잊어버립니다. 그것또한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언젠가는 생각이 나게 되어있습니다. 자신이 큰 파도를 겪을때. 딱! 그때 생각이나죠. 그래서 이것을 찾게 되구요. 다시 들어보고 다시 읽어보고 '아! 이말이었었구나.'하고 이해를 합니다. 그 이치를 공자님의 말씀으로 적어놓은 것입니다.
'들은 것은 잊어버리고, 본 것은 기억하고, 직접 해본 것은 이해한다.' - 공자 -
제가 어렸을적 아무리 그렇게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이게 좋다.' 또, 종교라던지 이런 쪽에서도 '이거 믿어봐라.' 등등의 여러 말들을 했는데요. 그때는 귀에 들어오지가 않았었죠. 근데, 어느 순간이 되니까 그런 것들이 다 떠올랐죠. 그래서 찾게되고 읽어보게되고 들어보게되고.. '아! 이거였구나.'라고 깨닫게되죠. 그래서 제가 아무리 떠들어봤자 지금 그렇게 멋모르고 날고 뛰고 하는 사람들은 '잘 모를것이다.'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해놓음으로써 그런 사람들에게도 약간은 영향을 줄 수 있구요. 그 사람들이 어느 순간 큰 파도를 겪으면서 깨달음을 얻을때 이 책과 지금 하고 있는 방송..팟캐스트가 아주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이치'가 올바르게 전파가 되면 이 세상이 좀 더 빨리 평화로워지겠죠? 그리고 저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이런 이야기들을 더 많이 하겠군요. 이 책에서도 많이 써놧던 것처럼 '그럼, 우리 어떻게 살아야되지?' 이것에 대해서 ㅎㅎㅎ 고민을 하면서요. 고민이라고 하니까 이상하네요. 그런것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할것입니다. '우리 어떻게 살아야 돼?' 네,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즐겁고 행복하게.. 다 그렇게 살 수 있는 날이 올때까지..
문득 예전에 일기를 썼던 글이 생각이 납니다. 서울에있는 어느 한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서 썼던 일기인데요. 그때 한 결심이 있어요. '세상의 모든 사람을 부처로 만들어 버리겠다.' 또, '이 세상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 부처로 살고 있는 우리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서로 싸우고 고통받고 있구나.' 그 말이 생각이 납니다. 아마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일을 하고 있는줄도 모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부처를 만들기 위해서 '이 세상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다.'라는 것을 전파를 하고 있는 것이죠. 오늘 또, 평화가 행복이 한걸음 더 다가왔습니다. 앞으로는 행복한 곳으로만 가게 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 이야기는 이만 마치겠습니다.
현재시각 14시 50분을 지나고 있습니다. 나른한 오후가 되겠네요. 정신을 맑게 해주는 차라도 한 잔 하면서 남은 일과를 잘 마무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맘야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맘야가 바라보는 세상.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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